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동쪽의 바우네이(Baunei)는 에메랄드빛 해안선과 고요한 절벽 트레킹으로 유명한, 아직 많은 여행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장소다. 인위적인 리조트나 상업적 관광시설 대신, 절경과 자연, 그리고 침묵의 여백이 이곳을 채우고 있다. 혼자 여행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이 마을은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내면의 고요를 되찾고 싶은 이들에게 깊은 위안을 선사한다. 바우네이는 단순한 목적지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진정한 대화를 위한 공간이다.
관광지보다 여백이 있는 곳, 바우네이에서의 첫 발자국
유럽 여행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파리의 에펠탑이나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상징적 장소를 떠올린다. 그러나 여행의 진정한 가치가 꼭 화려함에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더 깊은 울림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동쪽에 위치한 바우네이(Baunei)는 그런 장소 중 하나다. 인구 3,000명 남짓의 이 작은 마을은 상업적 관광지의 붐을 비껴간 덕분에, 여전히 본연의 자연과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다. 바우네이는 절벽 위 언덕에 자리한 산악 마을로, 붉은 지붕과 회백색 석재 건물들이 지중해 특유의 건축미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도시의 빠른 템포와 소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자연의 리듬을 따르도록 유도한다. 아침엔 바람 소리로 눈을 뜨고, 저녁에는 노을과 함께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한다. 누군가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한 곳이란 점에서 바우네이는 특별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은 곳, 오히려 혼자 있기 때문에 풍경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곳. 바우네이는 여행자가 아닌 ‘사색가’를 위한 도시다. 복잡한 일정도, 쉴 새 없이 돌아다녀야 할 명소도 없다. 대신, 나를 마주하는 긴 산책과 깊은 침묵이 있다. 그 자체가 이 마을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셀바지오 블루, 침묵의 트레킹과 바다로 향하는 고요한 길
바우네이의 대표적인 매력은 단연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 ‘셀바지오 블루(Selvaggio Blu)’다. 이 경로는 유럽에서 가장 난도 높은 트레킹 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그만큼 보상도 확실하다. 걷는 도중 마주하게 되는 풍경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웅장하고 숭고하다. 석회암 절벽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해안선,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깊은 만, 그리고 발아래 펼쳐진 원시림은 마치 자연의 교향곡 같다. 트레킹 경로 중 일부는 초보자도 도전 가능한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바우네이에서 칼라 골로리체(Cala Goloritzé)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비교적 완만하며, 풍경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갈길과 흙길, 숲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멀리서 들려오는 바닷바람 소리는 마음의 잡음을 씻어낸다. 주변엔 안내판도 간판도 거의 없다.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침묵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배경이 된다. 칼라 골로리체에 도착하면 마치 동화 속 풍경 같은 해변이 펼쳐진다. 이곳은 자동차로는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고요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흰 자갈 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SNS를 위한 사진 한 장보다, 이 고요한 시간 자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바우네이의 본질은 이런 순간들에 있다. 목적지를 찍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들여다보는 여정.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통해 내면의 정적을 마주하게 되는 그 모든 과정이, 바우네이를 특별한 장소로 만든다.
혼자일수록 더 가까운 풍경, 바우네이에서 만나는 나
현대인의 일상은 언제나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스마트폰 알림, 회의, 대화, 도시의 소음.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과 멀어진 채 살아간다. 그러나 바우네이에서의 시간은 이 모든 것에서 거리를 두게 만든다. 소음이 줄어들고, 할 일이 줄어들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조용한 만남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강렬하다. 바우네이는 거창한 관광지를 원하는 이에게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내면의 여백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는 가장 완벽한 장소다. 혼자라는 것이 결코 외로움이 아닌, 자유와 성찰로 이어지는 발판이 된다는 것을 이곳에서 직접 느낄 수 있다. 트레킹 중 들리는 자신의 숨소리, 파도와 바람의 리듬, 저녁노을 아래 조용히 빛나는 마을의 풍경은, 여행자에게 말없이 이렇게 속삭인다.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고. 바우네이에서의 하루는 길지 않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는다. 도심으로 돌아간 뒤에도 문득 떠오를 그 절벽의 풍경, 고요한 바다, 침묵 속의 산책길은 다시 나를 여행으로 부를 것이다. 언젠가 또 혼자 떠나고 싶을 때, 바우네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