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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숲이 흐르는 도시, 칠레 발디비아 혼자 여행하기

by goldengeneration 2025. 7. 30.

 

칠레 남부에 위치한 발디비아(Valdivia)는 세 개의 강이 만나는 풍요로운 물의 도시이자, 독일 문화가 남긴 건축과 맥주 문화가 공존하는 낭만적인 여행지다. 혼자 여행하는 이에게 이 도시는 강가를 따라 걷는 여유, 수상 시장에서의 소소한 감동, 천천히 흘러가는 하루의 리듬을 선물한다. 바다사자가 누워 있는 강변, 역사적인 요새, 식민지 시대 건축물들 사이에서 조용히 머무는 이 시간은 진정한 회복의 여행이 된다.

강이 흐르고 시간도 흐르는 도시, 발디비아

칠레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긴 지형 속에서, 발디비아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도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 머무른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곳은 시간을 천천히 되돌리는 힘이 있다”고. 발디비아는 칠레 남부, 로스리오스(Ríos) 주의 중심 도시로, 크루세스 강, 칼레우칼레우 강, 발디비아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 이 세 강은 도시를 부드럽게 감싸며, 마치 도시가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곳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16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건설되었으며, 이후 독일계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유럽풍의 건축물과 문화가 도시 곳곳에 녹아들었다. 이런 다층적 역사는 도시의 정체성을 풍부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매력은 ‘혼자 머물기 좋은 도시’라는 점이다.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없고,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걷지 않아도 된다. 단지 강변을 따라 걷고, 벤치에 앉아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눈앞을 지나가는 바다사자 한 마리를 조용히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곳에서의 하루는 충분히 의미 있다. 혼자 이곳을 찾는 여행자에게 발디비아는 부담 없이 받아주는 도시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과하게 도시화되지도 않았고, 불편할 정도로 전통적이지도 않다. 말하자면, 적당한 조용함과 적당한 편안함이 균형을 이루는 곳. 그래서 더욱 걷기 좋고, 멈추기 좋은 도시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지만, 내가 주변을 관찰하고 스며들 수 있는 여유를 주는 도시. 발디비아는 그런 도시다.

 

걷고, 보고, 머무는 발디비아의 하루

발디비아 여행은 ‘목적지 중심’보다는 ‘경험 중심’의 방식으로 구성된다. 가장 먼저 도착하면,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해보자. 도시 중심부에는 수상 시장인 ‘페리아 플루비알(Feria Fluvial)’이 있다. 이곳은 현지 어부들과 농부들이 직접 잡거나 기른 생선과 채소, 과일, 치즈 등을 판매하는 공간이다. 혼자 시장을 걷다 보면, 식재료 자체의 풍요로움보다 사람들의 표정과 손길에서 오는 진짜 따뜻함이 느껴진다. 시장 근처 강가에는 늘 바다사자들이 누워 있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늘어진 그들 앞에서, 도시의 시간도 함께 느려진다. 그 옆에는 오래된 나무 벤치가 줄지어 있어,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여행이 된다. 혼자 있기 좋은 조건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이후에는 ‘니에블라(Niebla)’로 향해보자. 이곳은 발디비아 강 하구에 위치한 조용한 해변 마을로, 17세기 스페인 요새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버스를 타고 약 30분이면 도착하며, 바다와 접한 성벽 위를 혼자 걷는 일은 마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준다. 요새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잔잔하고 넓으며, 머릿속을 채운 생각들이 하나씩 흩어져 가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도시로 돌아오면 발디비아의 ‘독일 맥주 문화’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 19세기 독일 이민자들이 만든 수제 맥주 양조장이 여럿 있으며, ‘쿤스트만(Kunstmann)’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꼭 맥주를 마시지 않더라도, 카페나 펍에 앉아 창밖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발디비아는 충분히 낭만적이다. 혼자 테이블에 앉아도 어색하지 않고, 묵묵히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시간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도시. 그것이 발디비아의 진짜 매력이다. 밤이 되면 도시의 불빛이 강에 반사되어 잔잔한 물결을 따라 흔들린다. 그 조용한 반짝임은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 그래서 오히려 많은 것을 하게 되는 도시. 혼자 걷는 이에게 발디비아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하루를 잘 살게 해주는 작은 도시다.

 

혼자라는 자유, 그 여백을 채우는 발디비아

누군가와 함께라면 느끼지 못할 정적이 있다. 말 없이 걷는 거리, 익숙하지 않은 표지판, 그리고 스치는 강바람. 그런 모든 순간이 혼자일 때 더 깊고 진하게 다가온다. 발디비아는 바로 그런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도시다. 격렬한 자극은 없지만, 조용한 감정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혼자 떠난 여행이 외롭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발디비아는 그 외로움을 품고 천천히 따뜻하게 데워준다. 혼자라는 이유로 불편하거나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여행자의 존재가 도시를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받아주고, 나만의 리듬을 지켜볼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발디비아에서의 하루는 그래서 ‘휴식’이라는 단어보다 ‘존재’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며 창밖을 보는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다시 오고 싶다.” 하지만 그 감정은 단순한 여행지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그곳에서 만났던 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발디비아는 그런 여행지를 만든다. 풍경보다 마음이 기억하는 도시. 그 속에서 나를 잠시 쉬게 해 준 도시. 혼자의 여행이 가진 온전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 준 도시, 발디비아.